1부: 은혜의 여정, 믿음으로 걸어가다
이원상 목사는 1937년 중일전쟁 중 중국 만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이성봉 장로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만주로 이주한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만주 산성진교회에서 헌신하며 아들에게 믿음과 온유한 성품을 물려주었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원상 목사는 어린 시절을 보냈고, 8세까지 만주에서 자란 후 공산정권의 종교 탄압으로 가족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평안북도 만포진으로 이주했다.
만포진에서 2년을 보낸 후, 공산화된 북한을 떠나 1947년 남한으로 피난 온 이원상 목사는 3.8선을 넘는 험난한 여정 속에서 아버지의 기도를 보며기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서울 청량리에서 피난민 생활을 하던 중, 안상기 장로의 도움으로 경산으로 이사하며 안정적인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경산에서 국민학교, 중학교,대구상고를 거쳐 계명대학교 철학과에 수석 입학한 그는, 목회자의 꿈을 품고 신앙과 학업에 충실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가정 형편을 고려해 상고에 진학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삶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았다. 최동진 목사 등 신앙의 선배들에게 영향을 받아 기도와 복음 전파에 헌신할 결심을 굳혔다.
대학 시절 계명대에서 철학을 전공하며 신학적 사고를 깊이 있게 다졌고, 부흥회와 주일학교 사역을 통해 목회의 첫걸음을 뗐다. 군 복무 중에도 신앙생활을 이어가며 성장했고, 제대 후 경북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평산교회 전도사로 사역하며 교회 건축을 이끌었고, 이는 후일 와싱톤중앙장로교회 사역의 토대가 되었다. 이 시기, 경산교회에서 만난 김영자(후에 이영자)와 결혼하며 가정 사역의 동반자를 얻었다. 이영자 사모는 약사로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장모 강옥화 권사의 기도와 헌신도 큰 힘이 되었다.
1968년, 이원상 목사는 댈러스신학교 유학길에 올라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익히며 성경 주해에 깊이 몰두했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힘든 시간을보냈지만, 아서 키니 목사 부부 등 주변의 도움으로 버텼다. 이영자 사모도 미국으로 건너와 약사보조로 생계를 도우며 템플대학에서 약학을 공부했다. 이후 펜실베이니아대학 박사과정에 입학한 이원상 목사는 학자의 꿈을 키웠으나, 장모의 기도와 아들 요셉의 병(癒)을 계기로1977년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며 목회의 길을 선택했다. 그의 삶은 평범함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따르는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