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목회와 사역
이원상 목사는 1977년 12월 4일 와싱톤중앙장로교회에서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라는 제목으로 첫 설교를 하며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목회하겠다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당시 교회는 담임목사의 문제로 분쟁을 겪고 있었고, 교인 수가 급감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원상 목사는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 말씀에 기초한 올바른 신앙 회복을 목표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교회 재건과 성장
이원상 목사는 부임 직후 새벽기도를 시작하며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초기에는 이원상 목사 부부만이 기도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성도들의 참여가 늘어났습니다. 또한, 수요예배를 통해 성경을 각 권별로 강해하며 말씀을 깊이 있게 가르쳤습니다.
교회 건물 위치가 범죄율이 높은 지역에 있어 성도들의 안전 문제가 발생하자, 이원상 목사는 버지니아 지역으로 예배 처소를 옮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결국 맥클린에 있는 루인스빌장로교회를 빌려 예배를 드리게 되면서 새벽기도가 더욱 활성화되었습니다. 그는 심방 사역에도 힘쓰며 성도들을 격려하고, 대학선교회(CCC) 교재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강해 등으로 성도 양육과 훈련을 실시했습니다.
목회 위기와 극복
이원상 목사는 교단 가입 문제와 목사 안수 과정의 어려움으로 예기치 못한 분쟁을 겪었습니다. 일부 성도들은 그의 목회 방식과 펜실베이니아 노회의 정통성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제기했고, 교회 지도자들 간의 갈등으로 이원상 목사를 축출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었습니다.
교회 분열에 깊은 책임을 느낀 이원상 목사는 기도하며 성도들의 의견을 경청했습니다. 그는 사임까지 고려했지만, 결국 교회를 떠나지 않고 남아서 성도들과 함께 교회를 섬기기로 결심했습니다. 이후 그는 매주 수요일 금식기도를 시작했고, 이는 그의 26년 사역 기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성전 건축의 역사
교회가 성장하면서 예배 공간의 필요성이 커졌고, 성도들은 성전 건축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1982년 건축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성도들은 헌금과 바자회를 통해 건축 헌금을 모았습니다. 또한, 전 교인이 돌아가며 매일 금식기도를 하는 운동을 전개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1984년 10월 4일, 비엔나 성전 건축 공사가 시작되었고, 1년 후인 1985년 12월 7일 헌당 예배를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