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라오라

(2023년 01월 29일)

카라바조가 그린 ‘마태를 부르심’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가버나움 세관에 세련된 옷을 입은 다섯 명의 세리들이 앉아 있고 예수님이 그 가운데 한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사람을 두고 사람들은 저마다 누가 마태인지 추측합니다. 많은 사람은 세리 가운데 한 사람이 가리키는 것을 보고,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마태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마태를 부르실 때 그가 청년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사람은 이미 나이가 든 사람처럼 보입니다. 이 그림을 통해 카라바조가 보여주려 하는 메시지를 생각하면, 가장 왼쪽에 앉아서 그의 눈이 책상 위의 동전에 고정된 것처럼 보이는 젊은이가 더 확실하다고 보입니다. 젊은이의 모습을 세심하게 들여다 보면 그의 눈은 책상 위의 동전을 바라보지만, 그의 마음은 자신 앞에 서 있는 예수님께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리 마태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갈릴리 해변에서 젊은이들을 불러 함께 다니면서 하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병자를 고치고 기적을 행하는 예수님의 이야기는 이미 이스라엘 전역에 바람처럼 퍼진 상황이었습니다. 그 예수님이 세관에 들렀으니 마태의 마음은 철렁 내려 앉았을 것입니다. 당시 세리는 정해진 세금보다 과도하게 세금을 거두어 일정량을 로마 정부에 바치고 나머지는 자신이 취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손가락질 당했던 민족의 배반자요 죄인으로 낙인 찍힌 사람이었습니다. 세리 마태의 가슴은 망치로 치는 것 같이 쿵쾅거렸습니다. 숨죽이며 귀를 기울이는 그에게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나를 따라오라. 예수님의 부르심은 간결했고 분명했습니다.  마태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나같은 죄인을 책망하지 않고 당신의 제자로 부르시는 예수님, 그 음성은 부드럽고 따스했으며 진심이 담긴 초청이었습니다. 그 순간 지나간 모든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로마의 압제 하에 꿈을 잃어버린 청년 시절, 세리가 되어 재물이라도 모아 인생을 편하게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매일 다가오는 동족을 배신했다는 죄책감, 재물은 모았지만 황혼이 찾아오면 물밀듯 스며들 것 같은 공허감, 애써 피하려 해도 그의 내면에 꿈틀거리는 양심의 소리를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그를 향한 하늘의 초청에 마태는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세리 마태, 마태는 평생 자신의 이름 앞에 ‘세리’라는 명칭을 붙였습니다. 그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돈을 향해 달려갔던 비참한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고 이런 죄인을 품으신 예수님의 사랑과 긍휼을 기억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제 이름 앞에도 ‘죄인’이라는 한 단어가 따라 다녔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자신이 누군인지 보이고,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예수님이 하신 일이 보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죄인이라는 이름을 십자가의 피로 다 씻기시고 제 이름 앞에 ‘의인’이란 명칭을 새겨 주셨습니다. 하늘 나라의 제사장으로 왕 같은 당신의 아들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카라바조는 그림에서 누가 마태인지 정확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림에 나오는 다섯 명 가운데 누구라도 그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그림을 보고 있는 나 자신이 바로 그 사람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라.
여러분의 목사 류응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