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23일)
신학대학원생 시절, 방학이 되면 낙도와 오지로 선교활동을 다녔습니다. 일년에 두 번은 꼭 다녀온 곳이 강원도 삼척군 신기면 대이리라는 마을입니다. 요즘은 환선굴이 개발되어 하루에도 많은 차량이 오고 가지만 1995년도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하루에 여섯 번 다니는 버스가 전부였습니다. 누가 몇 시에 타는지도 정확하게 알고 있어 사람이 기다리지 않으면 친절한 기사는 경적을 울리곤 했습니다. 대이리에는 21가정이 살고 있고 조상대대로 이곳에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이 마을에 선교를 가면 늘 머무는 집이 있습니다. 마을 중간에 개울이 흐르고 ‘덕촌’이라는 간판을 붙여 놓은 집, 김진우라는 형제가 살고 있는 집입니다. 참 해맑은 미소를 담은 형제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근육 무기력증을 앓기 시작해서 중학교를 마치지 못했습니다. 한참 꿈으로 자라나는 청소년 시기에 점점 약해져가는 몸으로 결국 걷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옆방으로 이동하는 것이 마치 강을 건너는 느낌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비관하고, 내일을 그려볼 수 없는 아픔을 삼키며 살았던 진우에게 어느 날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독교 라디오 방송을 통해 복음을 듣게 된 것입니다. 나같은 보잘것없는 사람도 사랑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주님이 궁금하기 시작했습니다. 진우 형제의 스토리를 듣고 저는 해마다 여름과 겨울이면 선교팀과 함께 그의 집에 방문해서 말씀을 나누고 온 마을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진우 형제는 그렇게 신앙으로 자라갔고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시를 써서 아름다운 삶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진우 형제를 마지막으로본 것이 20년이 흘렀습니다. 오늘 지나간 편지를 정리하다가 진우 형제에게 보낸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2003년 1월17일 당시 진우 형제가 많이 힘들어 할 때 제가 유학했던 마지막 해에 보낸 글이었습니다. “그는 친구가 참 많은 사람이다. 봄이면 파릇한 풀 향을 실어 나는 봄바람이랑 여름이면 긴 태양의 등살에 풀 죽은 호박덩굴이 온몸을 풀고 가을날 여치와 귀뚜라미 온 밤 울고 나면 모두 떠난 자리에 여전히 창가를 두드리며 찾아오는 겨울 바람, 그는 참 친구가 많은 사람이다. 난 그의 친구인 것이 참 좋다. 때로 푸른 하늘 한번 차분히 쳐다보지 못하고 지나는 날, 사방에 핀 꽃을 향해 걸음 한 번 멈추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다가 갑자기 빛처럼 떠오르는 그의 환한 얼굴을 생각하거나 먼이국 땅에서 무거운 가방을 메고 도서관을 나설 때 문득 떠오르는 그를 그려보면 달님은 따스한 빛으로 그의 모습을 비춰준다. 사랑하는 진우 형제, 당신은 소망을 품은 한 마리 새입니다.” 오늘 긴 세월 흘러 진우 형제 소식을 알아본 후 마음 깊은 아픔의 빗줄기가 흘렀습니다. 주님의 품 안에 안긴 형제, 많은 아픔과 눈물로 걸어온 삶이지만 하늘같은 미소로 살아간 형제, 그의 삶을 그려보면서 가장 낮은 자에게 찾아오셔서 하늘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삶이란 때론 아픔도 깊지만 한없이 경이롭고 매순간 고마움으로 넘칩니다.
여러분의 목사 류응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