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2023년 12월 17일)
지난 월요일, 첫눈이 내렸습니다. 온 세상을 새하얗게 덮은 눈은 아름다운 추억을 기억하도록 자연이 마음의 창을 두드리는 소리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처음 유학한 곳은 보스턴이었는데 눈이 한번 내리면 무릎까지 잠길 정도였습니다. 아침이 되면 밤새도록 깔끔하게 제설작업을 해 놓았기 때문에 길가에 산더미처럼 쌓인 눈을 보면서 행복하게 교실로 들어간 기억이 떠오릅니다. 제가 중국에서 사역했던 곳은 대부분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입니다. 길림성 장춘에 내리는 눈은 한번 시작하면 밤이 지나도록 내리곤 했습니다. 얼마나 겨울이 길었으면 긴 봄이라는 장춘(長春) 이름에 짧은 겨울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들어있습니다. 장춘에서 밤 늦게 집에 돌아갈 때마다 화롯불에 구운 옥수수를 하나씩 사 먹곤 했습니다. 찬 바람 이는 골목에 구운 옥수수를 팔던 할머니, 때로 아주 늦은 밤이면 제가 올 때까지 돌아가지 않고 기다려 주곤 했습니다. 아무렇게나 길바닥에 앉아 옥수수를 먹고 있으면 화롯불 가까이 오라고 저에게 손짓을 하곤 했습니다. 저는 화롯불에 손을 녹이며 행복한 미소로, “위미 하오츠, 옥수수 맛있어요”라고 말하곤 했고, 그때 그렇게도 좋아했던 할머니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10년도 더 되는 긴 세월을 섬겼던 무한은 눈이 내리면 차들이 잘 다니지 않습니다. 저는 털모자에 목도리를 칭칭 감고 아무도 없는 거리에 발자국을 남기면서 젊은이들을 훈련시키러 새벽 길을 걸었던 날이 많았습니다. 하얼빈은 중국에서도 가장 추운 도시입니다. 섭씨로 영하 30도나 되는 이곳은 비행기에서 아래를 바라보면 하얀 세상밖에 보이지 않는 진정한 설국입니다. 지천으로 쌓인 눈에도 오히려 추위를 덜 타는 것을 보면서 눈이 주는 포근함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중국 시골 마을에서 사역할 때면 가끔 도로 사정으로 나오지 못하고 시골집에서 몇일 동안 지낸 적도 있었습니다. 전화도 인터넷도 없는 곳에서 하루 종일 성경을 가르치며 지내는 시간은 천국과 같았습니다. 그때 함께 훈련했던 청년들은 다 어디서 무얼하는지 첫눈이 오면 그 애틋한 날들이 그립습니다. 첫눈은 순수함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거울입니다. 아무리 긴 세월을 보낸 사람이라 해도 첫 눈이 내리면 동심의 시절로 돌아가 고향집을 떠올리기도 하고 어머니 아버지의 얼굴을 그려보기도 합니다.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았던 경상남도 시골이었지만 밤새 내린 눈이 장독대 위를 하얗게 수 놓을 때 그 눈을 손으로 떠서 먹은 일들이 며칠 전의 기억 같이 다가옵니다. 사계절을 지나는 겨울, 온 세상을 하얗게 수놓는 첫눈은 예수님을 향한 첫 사랑을 기억나게도 합니다. 우리 영혼을 주님의 은혜로 말끔하게 씻고 하얀 도화지 같은 영혼 위에 다시금 삶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도 합니다. 주님, 매순간 첫눈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여러분의 목사 류응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