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2024년 1월 28일)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이 되면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제 마음에 늘 부끄러움과 죄송함을 함께 실어오는 추억 속의 한 사람입니다. 군대를 마친 후 대학교에 복학해서 동생과 함께 하숙생으로 지낼 때였습니다. 제가 섬겼던 교회는 서울 상계동의 상가 2층에 위치한 조그만 교회였습니다. 교회가 어려움을 맞이했을 때 대부분 성도님이 떠나가고 몇몇 청년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교회를 지켰을 때였습니다. 거의 매일 밤 교회에 모여 밤이 지나도록 기도하면서 몇 시간 잠을 청하고 새벽기도를 마치고 학교로 가곤 했습니다. 흰 눈이 몰아치던 어느 겨울밤, 난로를 피워 놓고 몇 청년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였습니다. 자정이 다 된 시각에 30대로 보이는 한 청년이 교회 문을 두드렸습니다. 허름한 옷을 입은 그는 얼어붙은 손을 녹이며 우리 곁에 앉았습니다. 투박한 목소리와 헝클어진 머리카락 그리고 거친 얼굴에서 삶의 무게가 보였고, 한 쪽 눈을 상실한 그의 얼굴 모습은 보기에도 무서울 정도였습니다. 갈 곳이 없다는 그의 말에 제가 지냈던 하숙집에 데리고 갔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기꺼이 하리라고 다짐했던 청년 시절이었기에 달리 생각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수업을 마치면 그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사방에 수소문을 했습니다. 몇 곳에 일자리를 알선해 드렸는데 그는 하루 이틀 다녀보고는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그만두곤 했습니다. 그렇게 하숙집에서 보내던 시간이 길어지자 하숙집 주인에게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대화를 하다보면 얼마가지 못해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과 원망만 쏟아내는 그를 보면서 부담은 높아갔고 제 마음도 지쳐갔습니다. 학생 처지에 경제적으로 그를 도와주는 일에도 한계에 이르렀고, 마침내 그를 향한 저의 사랑도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찬바람에 눈까지 내린 추운 겨울밤, 그를 데리고 교회로 갔습니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이 여기까지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도와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면서 힘없이 교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몇 분도 채 흐르지 않았는데 갑자기 심장을 망치질하는 것 같고 호흡이 가빠오는 것 같았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까지 지신 예수님의 사랑, 그 사랑을 외치고 다니는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고 견딜 수 없는 후회가 찾아왔습니다. 곧바로 문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아무리 뛰면서 찾아보아도 어둠 속으로 사라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상계동 아파트 골목을 돌면서 원구씨, 원구씨, 목이 터지도록 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렇게 어둠은 깊어갔고 그 위로 눈은 쉴 새 없이 내렸습니다. 그 후로 다시는 원구씨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겨울 밤이 깊어가고 바람이 세찰 때면 그 이름을 떠올리며 하나님 앞에 후회의 눈물을 흘립니다.
여러분의 목사 류응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