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 때 평산교회라는 시골 개척교회를 다녔습니다. 당시 농촌에서 자녀를 중학교에 보내고 공부시킨다는 것은 퍽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1, 2학년, 이유 없는 반항의 시기를 겪던 사춘기 때 이원상 목사님이 첫 목회지로 우리 교회에 전도사님으로 부임해 오셨습니다.
제 어머니는 당시 극성스런 여 집사로 교회를 섬겼습니다. 교회일이라면 집안일 다 제쳐 놓고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전도사님이 심방하자고 하면 하던 일도 그대로 두고 온 종일 심방했던 일을 기억합니다. 저는 믿지 않는 동네 친구들, 학교 안 다니는 친구들 하고 어울리다 보니 못된 행동만 배우고 교회는 마지못해서 다녔습니다.
제가 아는 이원상 전도사님은 평소에 성경책을 보시거나 아니면 영어 관련 책이나 사전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습니다. 전도사님 얼굴은 너무 부드럽고 인자했습니다. 저는 전도사님의 말씀대로 저녁에 한 시간씩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전도사님을 가까이 대하면서 그분의 말씀과 하시는 행동이 일치함을 보았습니다. 저는 꿈은 있었지만 가난 때문에 공부할 여건이 안 됐습니다. 전도사님은 그런 저를 격려해 주시고, 기도를 가르쳐 주시고 자신도 경제적 어려움이 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지금까지 열심히 공부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게다가 어린 제가 말썽부리는 것을 다 알면서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신앙과 영어 공부에 힘쓰도록 지도해 주셨습니다. 오늘의 제가 목사가 되고 황금교회를 개척하며 40년간 목회하고 선교하는 목회자가 된 것은 물론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저의 롤모델이셨던 이원상 목사님 덕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목사님이 미국에 공부하러 가신 뒤 많은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서울에서 ‘평신도를 깨운다’란 제자훈련에 참석했다가 늘 생각만 하고 그리워하던 이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 연세에 미국에서 한국까지 훈련받기 위해 오셨다니 그분의 열정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목사님은 제가 목사가 된 것에 놀라셨습니다. 제 어머니 김정자 집사님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셨다며 좋아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