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5월, 휴스턴에서 교육 목사로 섬기면서 남미 아르헨티나 선교사로 파송받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은퇴를 앞두고 있던 담임목사님의 후임 목사가 될 것을 제의 받았습니다. 한 달간 고심하며 기도한 후에 사임을 결심하고, 8월 말까지만 교회를 섬기기로 하였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갑자기 파송교회가 없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임 결정을 교회에 알리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와싱톤중앙장로교회 이원상 목사님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한 번도 만나 뵌 적이 없었는데, 남미 선교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화를 하신 것입니다. 목사님의 첫 번째 질문은 “지금 교회에서 어떻게 섬기고 계십니까?”였습니다. 당황스러웠지만, 사실대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목사님이 “저희 교회가 남미 선교를 하려고 하는데, 저희가 파송해 드리면 안 될까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화를 끊기 전, 이 목사님의 마지막 말씀은 “기도하겠습니다”였습니다.
그리고 3개월간, 이원상 목사님은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를 주셨습니다. “박 목사님, 안녕하세요? 이원상 목사입니다. 가족 모두 평안하시지요? 기도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매번, 채 3분이 되지 않는 조용하고 간결한 말씀이었지만, 목사님의 전화는 제 마음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습니다. “아, 목사님께서 정말 기도하고 계시는구나!”
8월말 휴스턴을 떠나 워싱턴 덜레스국제공항에 도착했는데, 신학교에서 같이 공부했던 정강현 목사님이 마중을 나와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정 목사님 뒤에 계시던 한 분이 정중하게 목례를 하셨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겸손했던지, 평신도 한 분이 따라오신 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이원상 목사님이셨습니다. 선교사 후보를 마중하러 나오신 것도 그렇지만, 30대 젊은 목사에게 깊이 고개를 숙이시는 것은 제게 충격이었습니다.
여름날 뜨겁게 달구어진 밴 안에서 이원상 목사님의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셔츠 안으로 땀이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나 조목조목 선교사 후보를 위해, 또 선교하는 교회로 세우기 위해 간구하는 목사님의 간절한 기도는 계속되었습니다. 기도가 긴 만큼 기도 제목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긴 기도에 비해 교회 밴이 식당에 도착하는 동안 목사님은 거의 말씀이 없었습니다. 눈이 마주치면 미소만 지으시곤 했습니다.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식사기도 후에 “많이 드세요” 한 말씀만 하시곤 조용히 식사만 하셨습니다. 담임목사님답지 않게 처음 만난 젊은 목사 앞에서 오히려 수줍어하시는 것처럼 보일 만큼 겸손하신 모습은 이원상 목사님에 대한 변함없는 이미지로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이원상 목사님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세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겸손, 기도, 그리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선교사 후보 시절부터 시작해서 선교사로서, 또 SEED 선교회 임원으로서 이원상 목사님을 25년간 모시며 사역하는 가운데 깨닫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는 겸손한 성품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겸손은 가장할 수 없습니다. 말과 행동에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한두 번은 겸손하게 보일 수 있을지 몰라도 겸손한 사람이 되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와싱톤중앙장로교회 첫 번째 목회자 수련회에 참석했을 때입니다. 이원상 목사님과 같은 방을 배정받았습니다. 가방을 옮기고 난 후에 목사님께서 아니나 다를까, “같이 기도하실까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기도 제목을 먼저 물어 보셨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기도 제목을 나누셨습니다. 목사님의 첫 번째 기도 제목은 다시 한 번 제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박 목사님, 저는 설교를 잘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설교를 잘할 수 있도록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큰 교회의 담임목사로서 나이도 훨씬 어린 부목사에게 자기 설교의 부족함에 대해 고백할 수 있는 분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겸손은 진실된 기도를 낳고 기도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저는 그때부터 이원상 목사님의 말씀 사역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원상 목사님께서 목회와 선교 사역을 통해 이루어 놓으신 일들은 모두가 기도의 결과입니다.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모든 성도들이 그 증인입니다. 기도의 결과로 모든 일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