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2023년 12월 24일)
한해가 지나갈 즈음이면 청년 시절에 중국과 북한 접경 지역에서 북녘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생활했을 때가 떠오릅니다. 주로 20대 초반의 청년들이었는데 새벽과 저녁에는 말씀 훈련을 하고 낮에는 생활을 위해 자수를 놓으며 함께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양을 안고 있는 모습, 예수님의 얼굴, 또는 평온한 자연에 대한 그림을 자수로 놓았고, 오른쪽 아래에 ‘나눔’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었습니다. 저희 공동체를 나눔 공동체라 불렀습니다. 나눔이라 불렀던 이유가 있습니다. 다양한 이유로 중국으로 넘어온 북녘의 청년들이 복음을 만나게 되면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달려왔던 사람들, 먹고 사는 것이 목적이 되었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이라는 새로운 청년이 나타난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세상에 오셔서 자신의 몸과 피를 우리를 위해 다 쏟으신 주님을 만난 후에 더 많이 얻기 위해 달려간 인생이 나눔이라는 세상으로 새롭게 펼쳐지게 된 것입니다. 나눔은 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배우 오드리 햅번이 나눔에 대하여 한 말이 있습니다. “너에게 두 손이 있는 이유는 너와 타인을 돕기 위해서이다.” 주변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그를 위해 한 손을 건네는 모습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생일 케이크에 불을 붙일 때면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촛불 하나로 다른 초에 불을 붙여도 처음의 촛불이 약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눔이란 나눌수록 세상을 더욱 밝게 하는 촛불과도 같습니다. 나눔은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고,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향기이며, 자신을 자랑스럽게 만드는 비결입니다. 나눔은 배움의 절정이고 나눔은 성숙한 삶의 열매입니다. 땀 흘려 일하는 것은 우리의 생계를 유지하게 하지만 사랑으로 나누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더욱 값진 삶으로 만들어줍니다. 올해 성탄절에는 이웃을 돌아보며 나눔의 시간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나눔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나누는가에 있지 않고 기꺼이 나누고자 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나눔 자체가 누구를 위해 베푸는 호의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인류 공동체에 대한 즐거운 책임을 감당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나눔은 예수님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하늘을 버리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 당신이 보여주신 모든 삶은 오직 나눔 자체였습니다. 쓰러진 자들을 따스한 손으로 붙드셨고, 희망의 날개가 꺾여버린 사람들에게 하늘 소망으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주님은 마침내 죽은 우리 심장을 살리려 당신의 하나 밖에 없는 심장을 십자가 위에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나눔은 우리 주님이 나누어 주신 삶의 그림자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 그림자가 비춰지는 곳마다 실체가 되시는 그 예수님의 사랑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그때 나눔은 그렇게도 아름답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향기요 편지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목사 류응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