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새긴 이름

(2024년 4월 21일)

켄터키에서 박사과정으로 유학할 때 인디애나폴리스의 한인교회에서 영어회중, EM목사로 섬겼습니다. 아쉬운 짧은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갈 때 섬겼던 교회에서 액자 하나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제가 섬겼던 영어권 성도님들의 단체 사진과 이름들이 적힌 액자였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밤이 깊도록 그 사진과 이름을 보면서 지나간 추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마다 깊이 새겨진 사연으로 감사의 기쁨과 아픔의 눈물을 흘리면서 새벽을 맞았습니다. 그냥 사진과 이름이 아니라 제 젊은 날 모든 것을 쏟아 사랑하고 섬긴 학생들과 성도들의 삶이 그 속에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피터라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저는 주말 사역을 했기 때문에 2시간 30분이 걸리는 거리를 오고 가면서 토요일이면 집사님 댁에서 자주 머물곤 했습니다. 영어회중의 부장 집사님으로 섬기실 때 늘 저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목사님,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알아서 다 하겠습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었던 제가 영어회중을 섬겼고, 또한 주말에 잠시 시간을 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늘 부족하게 섬겼을 텐데 언제나 환히 웃는 모습으로 저를 격려해 주셨던 집사님의 사랑과 격려로 늘 힘을 얻곤 했습니다. 20년의 세월이 흘러 현재 집사님과 저는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다시 성도와 목사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참으로 착하게 자라난 아이들이 결혼할 때 모두 주례로 섬긴 기쁨을 가졌습니다. 그토록 긴 날들이 흘렀지만, 집사님의 헌신과 사랑을 생각할 때면 잔잔한 고마움이 흐릅니다.
 
사진 속에는 민이라는 학생의 얼굴도 보였습니다. 참으로 아픔이 많았던 아이였습니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민이는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친구 없이 홀로 지냈습니다.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몸을 자해하여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던 아이입니다. 주일 아침이면 집으로 전화해서 예배 때 만나 그냥 그대로 예배에 나오지 못하면 때론 집으로 심방을 가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예배를 마치고 교회 문을 나서는데 뒤에서 나지막이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돌아보니 민이가 저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한마디도 하지 않던 아이, 그 민이가 저의 눈을 보며 말했습니다. “Hi, Pastor Ryoo, thank you. I will miss you, 목사님, 고마웠어요, 보고 싶을 거에요.”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흐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가가서 그 아이를 꼭 안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너를 참으로 사랑하신단다. 너는 너무나 소중한 아이란다.” 저도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속히 돌아서야만 했습니다. 
 
언젠가 삶을 다하는 날, 우리가 지나간 자리에 기억되고 싶은 이름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 주님께서 기억해 주시기를 바라는 이름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살다 보면 긴 세월이 흘러 우리의 삶은 우리가 바라는 이름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목사 류응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