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1일)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 등의 명작으로 1954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어니스트 헤밍웨이, 장차 그의 아내가 된 메리 웰쉬에게 쓴 편지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평생, 나는 모든 단어를 생전 처음 보듯이 살아왔다오.” 헤밍웨이의 이 문장을 읽는 순간 평범하게 흘러가던 저의 의식 세계에 폭풍 같은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일상에서 생소하게 듣는 단어란 거의 없습니다. 늘 사용하는 단어라 해도 마치 살아서 처음 만나는 기쁨으로 읽고 말한다면 심장은 경이감으로 떨릴 것이고 가슴은 희열로 벅차오를 것입니다. 아침이면 동녘을 힘차게 딛고 떠오르는 태양을 볼 때마다 어제의 태양이 아니라 오늘 나를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그 찬란한 빛이 우리 영혼에 숭고한 기쁨을 비춰줄 것입니다. 하늘의 햇살이 눈가에 빛을 내릴 때 마음의 귀를 기울이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올 것입니다. “자, 다시 시작하는 거야.”
새로움이란, 존재하는 만물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을 보는 마음에 새겨져 있습니다. 신비감으로 호수를 바라보는 사람에게 물결은 자연을 노래하는 아리아로 들릴 것이며, 감사함으로 노을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석양은 인생을 펼쳐 놓은 풍경화로 보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했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본다. 손바닥 안에 무한을 거머쥐고 순간 속에서 영원을 붙잡는다”고 노래합니다. 모래 한 알이라 해도 하나님이 만드신 소중한 창조물로 바라보면 그 하찮게 보이는 것들이 모여 온 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에 감격할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들꽃 하나도 솔로몬이 입은 화려한 왕복보다 아름답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감탄하게 될 것입니다. 소중함을 품고 바라보는 삶은 한없이 아름답고 신비합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성경구절 앞에 더 이상 읽지 못하고 무릎을 꿇은 적이 있습니다. 당신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나를 살리고자 보내셨다는 그 말씀에 성경 전체가 사라진다 해도 그 분께 내 삶 전부를 드리는데 조금의 주저함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청년 시절에 잠시 미래를 두고 고민했을 때였습니다. 친구가 선물을 하나 보내왔습니다. 푸른 풀밭이 펼쳐져 있고 잔잔한 시냇물이 흐르는 그림 옆에 시편 23편이 새겨진 그림이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이 한 구절을 읽는 순간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에 다음 말씀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의 말씀이 필요 없었습니다. 이 한 구절에 내일에 대한 고민, 인생 전체에 대한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이든, 잠시 스쳐가는 사람이든, 반복해서 읽는 성경구절이든 생전 처음 보듯이 읽으면 삶이란 얼마나 경이로울까요. 호흡하는 순간마다 내가 살아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얼마나 숭고할까요.
여러분의 목사 류응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