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5일)
일본의 기독교 작가 엔도 슈사쿠가 쓴 <깊은 강>이란 소설이 있습니다. 오츠라는 주인공은 상지대학교 철학과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철저한 신앙으로 살았던 그에게 미치코라는 여학생이 그와 사귀자고 하면서 양파를 떠나라고 강요합니다. 미치코는 예수를 양파라 불렀습니다. 결국, 오츠는 양파를 버리고 미치코에게 빠졌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녀에게 버림받고 다시 주님께 나아갑니다. 그때 예수님이 하신 말입니다. “나에게 오라, 나도 너와 같이 버림받았단다. 그러나 나는 결코 너를 버리지 않는다.” 오츠는 프랑스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인도로 들어갑니다. 바라나시라는 도시에서 최하층민, 불가촉천민들을 위해 삶을 보냅니다. 그들의 평생소원은 죽을 때 화장해서 갠지스강에 뿌려주는 것입니다. 오츠는 그들이 죽을 때 갠지스강에 업고 가서 그곳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게 하고 그들의 재를 갠지스강에 뿌려줍니다.
하루는 쓰러진 한 노파를 등에 업고 갠지스강으로 옮겨주는 오츠, 더러워진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오츠는 기도합니다. “주님, 당신은 등에 십자가를 지고 죽음의 언덕 골고다에 오르셨습니다. 저는 지금 감히 그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주님, 당신은 등에 여러 사람의 슬픔을 짊어지고 죽음의 언덕 골고다까지 오르셨습니다. 저는 지금 감히 그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감히 주님을 흉내 내는 것을 용서해 달라고 하는 오츠. 우리도 한번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생에 이런 삶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 감히 예수님처럼 흉내라도 내어 본 것을 죄송하게 여긴 적이 있었는가. 예수처럼 살게 하소서라는 기도는 정말 무서운 기도입니다. 그렇게 살기에 우리는 너무나 허물과 죄로 덮여 있고, 죄인 된 우리 육체가 그 고결한 삶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소설 마지막에는 간디 수상이 암살당한 때를 보여줍니다. 한 일본인 관광객이 사람들의 사진을 찍다가 인도 사람들을 분노하게 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인도에서는 금지된 일이었습니다. 군중이 몰려 들어 그를 죽이려 할 때, 이를 지켜보던 오츠가 그를 막아섰고 사람들은 대신 오츠를 짓밟았습니다. 병원에 실려 가는 오츠를 향해 지켜보던 미츠코가 소리칩니다. “넌 정말 바보야. 그런 양파를 위해 일생을 바치고 네가 양파를 흉내 낸다 한들, 증오와 자기밖에 모르는 세상이 바뀔 리가 없잖아. 이렇게 무시만 당하다가 결국 목이 부러져 죽어가잖아.” 그때 오츠가 남긴 마지막 한 마디입니다. “이것으로 좋아. 나의 인생은 이것으로 좋아.” 이런 삶이 예수가 주인이 된 사람, 예수를 사랑하고 따라가는 사람의 삶입니다. 버려진 사람을 등에 업고 갠지스강을 향하는 사람, 다른 사람을 살리려 하다가 짓밟혀 죽는 것도 감사하는 사람. 부디 우리 삶이 주님의 흉내라도 내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살다가 언젠가 주님 부르실 때 조금이라도 주님을 닮아가다가 주님의 얼굴을 뵙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목사 류응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