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5일)
하루에 커피를 조금씩 세 잔 여유있게 마시는 삶은 얼마나 큰 행복을 주는지. 아침에 마시는 커피는 하루의 시작에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포르테처럼 힘찬 기쁨을 줍니다. 점심 식사 후에 마시는 커피는 메조피아노 같은 차분함을 안겨주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밤에 마시는 커피는 피아니시모 같은 선율로 하루를 돌아보게 합니다. 저는 커피 맛을 모르는 자 인생의 맛을 어찌 다 알겠는가 하며 커피 예찬가가 되었습니다. 동전 몇 개에 툭 하고 튀어 나오는 자판기 커피나 한쪽 끝을 찢어 뜨거운 물을 타면 바로 마실 수 있는 인스턴트 봉지 커피나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대충 커피를 마시던 제가 커피를 좋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다. 이전에 우리 교회를 섬긴 목사님이 갓 볶은 커피빈이라고 들고 와서 한잔 대접하겠다고 할 때였습니다. 모래시계를 옆에 놓고 손을 움직여 일정한 속도로 커피빈을 가는 목사님의 모습이 엄숙한 의식을 치루는 사람의 자세처럼 보였습니다.
아무리 커피 맛을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이런 정성에 그냥 숭늉처럼 마신다면 도저히 예의가 아닐 것 같아 저도 제법 정성을 들여 심호흡을 크게 하고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넣었습니다. 그 순간 신세계가 열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커피 맛이 온몸으로 느껴진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커피는 커피가 아니었습니다. 커피에 대한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입니다. 커피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게 가장 멋진 맛을 선물하는 요정과 같습니다.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하는 신맛, 스위트한 맛, 깔끔한 맛, 약간 짠맛, 고소한 맛 등 커피는 다양한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커피빈을 갈아 정성을 담아 내린 첫 잔은 하루의 피로를 씻어줄 정도의 만족한 기쁨을 선물합니다.
그렇게 커피를 좋아하며 하루에 몇 잔을 마시던 제가 어느 순간 커피잔을 놓아두고 참 고마운 마음에 사로잡혀 있는데, 그때 갑자기 커피가 아닌 커피잔이 눈에 보였습니다. 자신 안에 커피를 담고 때로는 뜨거움도 참아내고 때로는 식어가는 온기도 인내하며 너무나 고요하게 커피를 담고 있는 찻잔에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고마움의 인사는 조금도 받지 못한 채 묵묵하게 커피를 담고 있는 찻잔, 그 찻잔의 인내와 자신을 드리는 헌신에 고마운 마음이 일었습니다. 일상에서 평범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물이 얼마나 많은지요. 매일 몰고 다니는 자동차의 무게를 이겨내며 자신을 갉아가며 달리는 자동차 네 바퀴나, 하루 종일 앉은 무게를 지탱하는 의자의 다리는 얼마나 소중한지요. 엑스트라 같은 존재이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사람은 또 얼마나 고귀한지요. 어두운 예배당 구석에 앉아 눈물로 기도하는 성도의 모습은 얼마나 거룩한지요. 세상은 이런 소중한 사람과 평범해 보이지만 가치있는 일상의 사물로 인해 견고하게 서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한없이 찬란하고 아름답습니다.
여러분의 목사 류응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