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2일)
스페인 내전을 다룬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그리고 1차 세계 대전을 통해 영감을 얻은 <무기여 잘 있거라>라는 소설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있습니다.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 상과 노벨 문학상을 받은 그가 메리 웰쉬에게 쓴 편지 글에 나오는 말입니다. “평생, 나는 모든 단어를 생전 처음 보듯이 살아왔다오.” 온 세상 사람의 칭송을 한 몸에 받은 그가 보여준 언어에 대한 자세는 우리에게 경외감까지 들게 합니다. 눈 앞에 다가오는 모든 단어를 마치 호흡처럼 소중하게 여긴다면, 그에게 단어란 언어 전달의 문자가 아니라 삶 전체를 그려내는 생명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글이란 문자의 조합이 아니라 숨결이 스며있는 삶의 연장입니다. 195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그는 수상 소감에서 “나의 삶은 글쓰기가 되고, 나의 글은 영혼이 됩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마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가 한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나는 모든 글 가운데서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헤밍웨이도 니체도 기독교 신앙의 눈으로 보면 전혀 다른 세계의 삶을 살았지만, 그들의 말은 우리 일상의 언어를 돌아보게 만들고 깊이 생각할수록 우리의 심장을 찌를듯이 다가오게 됩니다.
글을 읽든지 말을 하든지 생전 처음 대하는 기분으로 한다면 우리 삶에는 소중한 변화들이 시작될 것입니다. 단어 하나 하나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사람에게 들려주는 말 한 마디가 나의 인생을 보여주는 거울처럼 여겨질 것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언어를 아름답게 바라보는 사람에게 언어는 그의 입에 향기로운 말을 선물해 줄 것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이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라고 말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어의 소중함과 그 위대함을 제대로 인식할 때 우리가 읽는 글과 쓰는 말에 조금 더 마음을 싣게 될 것입니다. 매일 입을 열어 말을 하는 우리에게 말을 고치기 전에 마음을 새롭게 할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모든 단어를 정말 생전 처음 보듯이 읽어야 할 책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하루 새롭게 나에게 들려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읽게 되면, 말씀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속삭임으로 들려올 것입니다. 연약한 나를 일으키는 거대한 손으로 다가올 것이며, 홀로 눈물지을 때는 눈물을 닦아 주시는 부드러운 주님의 음성으로 들려올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 앞에 무릎 꿇고 주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라는 말씀 앞에 감당할 수 없는 감사로 눈물짓게 될 것입니다. 모든 단어를 처음 보는 자세로 삶을 대한다면 우리 삶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하늘의 음률을 들려주는 교향곡의 선율을 발견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삶은 아름다운 눈을 가진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하늘의 선물입니다.
여러분의 목사 류응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