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8일)
로버트 블라이가 쓴 ‘사랑시, Love Poem’라는 제목의 짧은 시가 있습니다. “사랑을 할 때 우리는 풀을 사랑하게 된다. 헛간도, 가로등도, 그리고 밤새 인적 끊긴 작은 중앙로들도.” 인생의 어느 순간 이런 사랑의 감정을 느껴본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예수님을 만난 후에 일어난 위대한 두 가지 변화가 있었습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눈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새로워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이 없고, 사랑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도 없었습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에도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허물과 죄로 물든 자신의 모습에 아파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이 빚어가시는 아름다운 모습을 소중하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 하나님의 손으로 창조하신 것임을 알게 된 후에 온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교향곡처럼 다가왔습니다. 하늘을 날아가는 새들의 노래만 신기한 것이 아니라 새벽을 깨우는 아침 이슬 하나도, 이름 모를 들풀 하나도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습니다.
이런 위대한 사랑의 능력은 모든 고난과 역경을 극복할 힘을 줍니다. 제 생애 첫 발을 디뎠던 25년 전의 중국은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도로에는 차선과 관계없이 달리는 차량들, 신호등 불빛을 무시하고 길을 건너는 사람들, 거리에 마음대로 휴지를 버리는 사람들, 그 당시 중국은 무질서 자체였습니다. 시골로 들어가는 길은 비포장도로에 문도 없는 화장실, 그리고 위생관념이 전혀 없는 음식문화는 불편함을 넘어 불안함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한 가지, 저는 이런 중국이 너무나 좋았고 중국 사람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는 사실입니다. 차들이 지나는 길거리에서 먹는 국수는 먼지로 가득했지만, 중국 형제들과 웃으면서 국물까지 맛있게 마시곤 했습니다. 중국말은 이해하지 못해도 음악처럼 아름답게 들렸습니다. 가난하고 투박한 사람들이었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깊은 애정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모든 것이 애틋하게 다가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중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게 되면 상대의 허물도 감싸고 배려하는 너그러운 여유가 생깁니다. 사랑은 상대가 자격을 갖출 때 드러나는 반응이 아니라 내 속에 사랑 에너지가 넘칠 때 비로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이 사랑의 정점에는 언제나 예수님이 계십니다. 죄로 얼룩진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부활의 산 소망이 되셔서 우리에게 찾아오신 예수님. 사랑이란 이름에 눈이 멀어 우리의 허물을 보지도 못하시는 예수님. 그 예수님의 한없는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면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 자녀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됩니다. 예수님의 이 사랑을 받은 사람은 삶의 매 순간이 희열과 의미로 가득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사랑스럽고 정겹습니다. 길가에 풀 포기 하나도 소중합니다. 이 모든 것에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손길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목사 류응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