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5일)
지난주, 겨울이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땅 위에 봄비 같은 아주 따스한 비가 내렸습니다. 차가운 겨울을 잠시 달래려는 듯, 포근하게 땅을 적셨습니다. 가지런히 쌓인 낙엽 위에 조용히 내려앉으며 다가오는 추위에 얼굴을 보이기 주저하는 작은 꽃들을 향해 봄의 소망을 품으라고 다독거리는듯 했습니다. 살포시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걷다 보니 문득 지나가는 바람이 말을 걸어오는 듯 합니다. 너의 삶은 차가운 겨울 같은 세상에 어떤 비로 내리고 있는가. 너의 손에는 어두운 밤을 지나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줄 손수건이 있는가. 너의 말은 일상에 무뎌진 이들에게 봄비 같은 생동감을 주고 있는가. 바람이 걸어오는 소리에 마음을 기울이다 보니 분주히 돌아가는 세상 속에 차분히 내리는 빗줄기가 고맙게 느껴집니다.
찬 겨울에 따뜻함을 품고 내리는 비는 단지 물방울로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희망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맹렬한 추위에 아무리 얼어붙은 땅이라도 봄 햇살에 몸을 녹이며 언젠가 반드시 꽃을 피워낼 것이고 봄의 소식을 기뻐하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창공에 울려 퍼질 것입니다. 겨울의 깊은 침묵 속에서 땅의 생명은 숨을 고르며 잠들었다가 봄비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뜰 것입니다. 올해 마지막 달력의 며칠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를 찬찬히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지고 집집마다 환한 불빛으로 성탄을 준비하는 요즘, 아픔과 고독으로 외롭게 눈물 흘리는 사람은 없는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나의 작은 실천이 절망에 있는 누군가에게 위안을 주고 희망을 품게 할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 진정 의미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이 땅에 좀 더 밝고 희망찬 세상을 위한 한 조각으로 쓰여질 수 있다면 우리 삶은 참으로 아름답다고 할 것입니다.
포근한 빗줄기를 맞으며 갈릴리 해변가를 걸으셨던 예수님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로마의 식민 통치를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 힘겨운 삶에 소망이라는 등대의 불이 꺼져버린 시대에 우리 가운데 오셔서 당신의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히신 예수님.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묵묵히 죄인의 손을 붙들어 세우고 버려진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 주신 예수님, 자신을 비난하고 채찍질하는 사람들을 가슴에 품고 기도의 무릎을 꿇으신 예수님, 예수님의 사랑은 한겨울에 내리는 봄비와 같습니다. 아무리 얼어붙은 마음이라도, 그 따스함에 몸을 적시면 영혼의 만족과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은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많을수록 세상은 겨울의 쓸쓸함이 아니라 봄의 포근함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겨울 바람이 아무리 매섭게 불어도 언젠가 다시 봄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날까지 우리의 말 한 마디, 작은 실천으로 누군가의 추운 마음에 희망과 기쁨을 미리 싹 틔우는 씨앗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봄비와 같습니다.
여러분의 목사 류응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