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달력 앞에서

(2024년 12월 22일)

온 산천이 푸른 계절이 지나고 산천마다 가득 쌓인 낙엽을 보며
언젠가 인생의 겨울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소서
아무리 찬란한 삶이라도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감을 깨닫고
지금 살아 숨 쉬는 순간이 내 남은 삶 최고의 선물임을 알게 하시며
만나는 사람마다, 손에 잡히는 일마다, 소중히 여기게 하소서

겨울 들녘 추수가 끝난 빈 자리를 보며
채우려는 삶에서 벗어나 비움의 지혜를 배우게 하소서
무성한 여름날 나뭇잎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드러나고
숲 속에 숨겨진 길들이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낼 때
비워야만 보이는 삶의 겸허에 눈을 뜨게 하소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하고 싶은 말이라도 줄이게 하시고
사람들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열정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내 마음의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게 하시고
사람마다 제각기 품은 향기를 찾아내 인정하게 하시며
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기쁨 느끼는 삶이 되게 하소서

12월 달력 앞에 설 때마다 지나온 계절을 돌아보며
인생 화폭의 그림을 아름답게 수놓게 하소서
지난날의 아픔과 기쁨, 후회까지 감사로 품게 하시고
남아 있는 하루하루의 삶을 정성스럽게 맞이하며
순간 순간 삶의 품격을 잃지 않게 하소서

겨울이 내린 나무, 텅 빈 가지 위로 햇살이 내려앉듯
마음 깊은 곳에 평강과 사랑의 빛이 머물게 하소서
지금 차가운 바람 불어도 곧 다가올 봄 햇살을 마음에 품고
어둠 속에서도 어딘가에서 빛나고 있을 별빛을 그리워하며
계절의 끝머리에서 소망으로 가득 찬 새 날을 맞이하게 하소서.

여러분의 목사 류응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