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 뜰 앞에서

(2025년 6월 1일)

오랜 세월 지나 고향집을 찾아갔습니다. 사방에 아파트가 들어서서 어느 곳이 고향집인지 찾기가 어려워, 먼저 마을 뒤에 누워있는 태백산 자락으로 올랐습니다. 어린 시절 그 마을은 산 밑에 위치해 있어 참 살기 불편한 곳이었는데, 지금은 산자락의 아름다운 배경을 두고 하늘을 찌를 듯한 아파트가 바다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마을 옆을 흐르던 작은 강줄기 동천을 따라 44년 전에 전도 받았던 고향교회를 먼저 찾았습니다. 문이 닫힌 교회 앞에서 1981년 8월 21일 전도를 받아 처음 교회를 나갔던 그 날을 떠올리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교회에서 시작하여 이전 집을 찾는 일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옛날 모습을 간직한 몇 집을 발견하고 나서야 저희 집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고향을 떠난 지가 30년 가까이 되었지만, 옛집은 이전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집안을 둘러보니 본채는 뼈대만 남겨둔 채 기와 지붕이나 방도 모두 새롭게 단장했습니다. 옆에 토끼와 소를 키우던 마구간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서 아침 일찍 소 풀 베러 다녀오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흙마당을 보는 순간 그 옛날 한여름 마당 위로 떨어지던 세찬 빗줄기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습니다. 마당 가득히 물이 고여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할 때는 하루 종일 집에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 날이면 으레 아버지는 지나간 옛 이야기를 시작하셨고, 그러면 저는 아버지 말씀을 듣는 둥 마는 둥 마당에 빗줄기가 떨어지면서 만들어 내던 왕관을 하나씩 세어보곤 했습니다. 옆집과 경계를 이루던 대나무숲이 있었는데 저녁이면 일던 정겨웠던 바람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어르신이 한 분 있어 혹시 이 지역 분이신지 물었더니 그렇다는 말씀에, “제가 이 집에 살았습니다” 하고 인사를 드렸더니, 너무나 반갑게 “그 집 아들인가요” 하셨습니다. 대숲을 사이에 둔 옆집은 이제 허물어지고 이전 어른은 돌아가시고 그 아들은 집을 판 보상으로 다른 곳에 아파트도 한 채 사고 땅도 제법 매입해서 고물상을 한다는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참 신기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희 집을 매입해서 오늘까지 살고 있는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은 이제 땅이 개발되어 좋은 값으로 팔고 편안한 곳으로 이사를 가면 될텐데, 이 집에 아들들이 모두 잘 되어 터가 좋아 자손들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팔지 않고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참 웃고 지나갈 일이라 생각했지만 그 가난한 고향 사람들 가운데 그렇게라도 생각해 주니 참 고마운 마음이었습니다.

웬델 베리가 쓴 시구가 다시 떠오릅니다. “나에게 주어진 행운을 생각하면 나는 충분히 행복해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소음에 귀 기울였다. 경이로움에 무관심했다.” 아픔도 많지만 세상은 찬란하게 아름답고 삶은 한없이 경이롭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가슴에 새깁니다.

여러분의 목사 류응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