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함께 사는 사람

(2026년 3월 15일)

십자가 언덕 아래에는 침묵만 남아 있었습니다.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은 두려움으로 흩어졌고, 사람들의 눈에 예수는 로마에 의해 처형된 한 반역자에 불과했습니다. 그 때 조용히 빌라도 앞에 나아가 담대하게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요청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입니다. 당시 사이비 종교의 괴수로 십자가 처형을 당했던 예수, 그를 따르던 사람들도 잡혀 가던 상황이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도 한 곳에 숨은 채 문을 걸어 잠그고 벌벌 떨었을 때 홀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향해 걸어간 사람.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막 15:46).” 요셉은 예수님의 시신을 정중히 모시고 자신이 사용할 무덤 안에 안치했습니다. 세상은 예수를 실패한 지도자로 보았지만 요셉은 그를 진정한 자신의 왕으로 모셨습니다.

조선의 역사에도 폐위된 왕으로 살다가 애절하고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 단종의 시신을 거두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요즘 한국 영화계에 폭풍 같은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왕과 사는 남자”에 나오는 주인공, 조선 시대 강원도 영월의 평범한 마을 호장이었던 엄흥도라는 사람입니다. 역적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대를 멸하리라는 세조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그는 버려진 왕의 시신을 거두고 정중하게 모셨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결단이지만 목숨을 걸어야만 했던 선택이었습니다. 단종의 시신을 묻은 후에 자신과 조상의 족보를 없애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존재 자체가 사라진 무명인으로 살아야 했던 오랜 세월, 200여 년이 지난 숙종 때 단종이 복위되고 엄흥도 역시 ‘충의’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생명을 걸고 눈물로 시신을 안장했던 그 자리는 오늘날의 ‘장릉’이 되었고 역사는 그의 이름을 충성스러운 한 인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알려진 관인도 아니요, 뛰어난 문장을 남긴 사람도 아닙니다. 잘못된 폭정 앞에 쓰러진 비운의 왕을 가슴에 품고 모두에게 버려진 한 사람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지켜준 사람이었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흔적을 화려하게 기록하지만 엄흥도의 선택은 패자의 아픔을 피로써 기록한 한 인물이었습니다.

엄흥도의 삶은 오늘날 우리가 모시는 왕 예수 그리스도를 어떤 자세로 대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도망간 제자들과 달리 나는 주님을 끝까지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온 몸의 피를 쏟으며 고통 속에 호흡이 식어가는 예수님 앞에서 나는 묵묵하게 주님과 눈을 마주하며 “주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주님 사명을 이어가겠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가? 오늘날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 나의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님이 왕이라는 고백이 나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목사 류응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