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7일)
무성한 여름 숲이 지나간 자리에 단풍이 내려앉는 가을이 오면 먼저 떠오르는 시가 있습니다.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라는 시입니다. 시인은 첫 연을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라는 기도로 시작하며, 우리를 하나님 앞에 겸허하게 머리를 숙이는 자리로 안내합니다. 가을은 자연을 통해 우리에게 인생을 가르쳐 주는 가장 좋은 선생입니다. 봄은 푸름을 자라나게 하고, 여름은 온 세상을 푸름으로 가득 채우지만, 가을은 잠시 멈추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짧아진 햇살은 한 해의 끝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언젠가 인생의 겨울이 찾아온다는 것을 조용히 일깨워 줍니다. 시인의 고백처럼 이 가을에는 주님 앞에 깊이 나아가는 기도의 시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란 하나님께 무엇을 더 얻어내는 시간이 아닙니다. 분주한 걸음을 잠시 멈추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더 빨리 달려가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내가 지금 가는 길이 바른 길인지를 묻는 시간입니다.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산천을 바라보며 지난 시간에 감사하고, 걸어온 날들을 돌아보며, 남아 있는 날을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 조용히 주님께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시인은 두 번째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가을은 위로 올라가는 성장을 넘어 아래로 깊이 들어가는 성숙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계절입니다.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오늘이 얼마나 소중한지,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부모님께 전화를 드릴 수 있는 날도, 자녀를 품어 줄 수 있는 날도, 친구와 차 한잔 나눌 수 있는 날도, 교우들과 함께 예배하고 서로를 격려할 수 있는 날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가을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 가슴에 새기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사람을 품고 배려하고 용서하며 살아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 가슴에 깊이 새겨질수록 사랑하지 못할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을 용서할 힘도 얻게 됩니다.
시인은 세 번째로 “가을에는 홀로 있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린 잠시도 가만히 있는 것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쁜 이 땅의 사역 가운데 예수님께서 자주 하신 일이 있습니다. 때로는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 하나님과 홀로 만나는 시간을 가지신 것입니다. 사람들을 더 사랑하기 위해 잠시 사람들에게서 물러나셨고, 세상을 더 잘 섬기기 위해 하나님 앞에 홀로 서셨습니다. 홀로 있다는 것은 외롭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기 위해 세상의 소음을 잠시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번 가을에는 이 세 가지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면 좋겠습니다. 주님, 기도로 주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소서. 사랑으로 주님의 향기를 전하게 하소서. 홀로 있음으로 주님과 더욱 깊이 하나 되게 하소서. 가을이 깊어 갑니다. 우리의 삶도 주님 안에서 더욱 깊어지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목사 류응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