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보면 ‘유로지비’라는 말이 나옵니다. ‘성스러운 바보’라는 의미를 가진 말로 러시아 정교회의 영성이 스며든 단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자신을 비워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는 ‘케노시스, Kenosis’라는 개념에서 가져온 것으로, 예수님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유로지비의 마음을 가진다면 세상은 참 아름답고 향기로운 삶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유로지비의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납니다. 첫째, 어린아이 같은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계산적이지 않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신뢰하며 살아가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둘째, 바보 같은 모습입니다. 한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것도 바보 같은 일인데,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죽음의 길을 걸었던 예수님은 바보 중의 바보라 할 것입니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까지 내어주라는 예수님,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함께 걸어가라고 말씀하는 예수님, 십자가 위에서 조롱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예수님을 가만히 보면 정말 바보 같은 모습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예수님은 단순한 바보가 아니라 거룩한 바보라 할 수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전혀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었지만, 예수님은 스스로 어린아이 같은 바보가 되셨습니다. 셋째, 광인 같은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사람은 세상 사람의 눈에는 미친 사람처럼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압송되어 베스도 왕 앞에 선 바울이 외칩니다. 왕이여, 내가 결박당한 것 외에는 당신도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가 막힐 이런 상황에 왕이 하는 말입니다. 바울아, 너의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했구나. 바울은 미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광인 같은 모습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살아가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넷째, 나그네 같은 모습입니다. 예수님도 바울도 세상에서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취하지 않은 걸인같이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바울은 세상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며 오직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을 일생의 기쁨과 의미로 삼았습니다. 유로지비를 품은 사람은 세상에서 스스로 낯선 사람처럼 여기며, 세상의 삶은 여행 중에 잠시 머무는 삶으로 여기고 세상에 뿌리내리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하늘에 소망을 둔 사람은 세상이 보잘것없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찬란한 영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무릎을 꿇기 때문에 세상 그 무엇에도 굴복하지 않고 당당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이런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유로지비의 삶, 거룩한 바보의 삶이 베푸는 그 숭고한 기쁨이 우리 삶에 넘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목사 류응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