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9일)
최근에 투병을 하고 있는 한 성도님을 심방하게 되었습니다. 극심한 육체의 고통 앞에서도 주어진 삶을 하나님 앞에 고결하게 살아오신 한 분의 모습은 평온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의학적으로는 올해 봄꽃을 보기 어렵다고 진단을 받은 상황입니다. 목회자는 이럴 때면 어떤 기도를 해야 할지 많은 고민이 됩니다. 아직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든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이든 두 가지를 다짐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에 건강이 회복되기를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한편, 하나님이 허락한 시간이 다 되어 하늘로 부르신다면 하늘을 향한 소망을 확인하곤 합니다. 성도님께 조심스럽게 여쭈었습니다. 오랫동안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며 함께 지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땅 위에서 사명을 다 마쳤다고 부르신다면 마음이 어떠세요. 성도님의 대답은 놀라웠습니다. 그토록 사모하는 천국인데 너무나 기쁘게 주님 앞에 서야지요. 남아있는 가족에게 아픔을 남기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지, 저는 가장 좋은 주님 품으로 이사를 가니까 기대가 돼요. 성도님의 고백은 단순한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일생 주님 앞에 살아온 신앙의 고백이었습니다.
죽음이란 흔히 두려움과 슬픔의 대상으로 여겨집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피하려 하고 언급하는 것조차 꺼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인생의 한 부분이며, 죽음 그 자체는 가장 의미있고 행복한 삶을 만들어주는 거울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이란 막막한 미래도 아니요, 단순한 삶의 종결도 아니요,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죽음을 수동적으로 당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아름답게 맞이해야 합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지혜입니다. 톨스토이는 “우리가 죽음을 기억할 때 비로소 삶이 더 소중해진다”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에 주어진 하루하루는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귀한 선물입니다. 삶에서 가장 큰 상실은 죽음 자체가 아닙니다. 살아있는 동안 우리 안에 어떤 것이 죽어버려 삶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인 것처럼 여기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안타까운 상실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것과 같습니다. 삶의 목적과 의미는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됩니다. 우리가 아직 이 땅에서 숨 쉬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한 날의 기회와 사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오늘은 어제 세상을 떠난 사람이 그토록 기다린 그 한날입니다. 겨울의 찬 바람을 이겨낸 후에 피어나는 꽃은 더욱 찬란합니다. 영원한 하늘의 기쁨은 죽음이라는 터널을 통과할 때 펼쳐집니다. 오늘 주어진 날 동안 삶에 대한 감사와 만족 그리고 하늘을 향한 기대와 소망으로 살아가는 삶, 매일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삶과 죽음을 가장 가치있게 대하는 길입니다.
여러분의 목사 류응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