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에 대하여

(2025년 2월 16일)

중국을 다니다 보면 곳곳에 ‘물망’(勿忘)이라고 돌 위에 새겨놓은 글자를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을 때 자행했던 처참한 역사를 세대가 지나더라도 잊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프랑스 화가 조르주 루오의 판화 중에 “의인은 향나무와 같아서 자기를 찍는 도끼에도 향기를 묻힌다”는 제목의 작품이 있습니다. 자기를 찍은 도끼, 그 도끼를 향해 분노가 아니라 아름다운 향기를 남기는 향나무. 자신을 저주하며 조롱하고 침 뱉으며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을 위해 예수님이 잠잠히 하신 기도가 있습니다. “아버지,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거친 호흡으로 죽음을 앞에 둔 상황에 사랑으로 용서의 향기를 남기신 예수님.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내가 준비되어서가 아닙니다. 오직 사랑이란 이름으로 하나님이 베푸신 용서가 우리 가슴 속에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는 나의 피난처>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코리 텐 붐 여사 이야기입니다.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을 때, 네덜란드에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코리 텐 붐 여사의 가족은 유대인들을 숨겨준 죄로 가족 모두 나치 수용소에 들어갔습니다. 부모님과 언니는 고문에 죽고 코리만 살아남았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여 목회자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독일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독일의 어느 마을에서 설교를 마치고 한 사람씩 인사를 나눌 때였습니다. 줄을 서서 앞으로 다가오는 얼굴 중에 나치 감옥에서 언니를 죽이고 자기를 고문했던 그 간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용서하라는 하나님께 코리 여사가 말합니다. “하나님, 저 인간만은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이 코리 여사에게 말씀했습니다. “나는 네가 저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묻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라는 나의 명령 앞에 순종하겠는가, 하지 않겠는가? 그것을 묻고 있는 것이다.” 코리 여사가 남긴 말입니다. “이상한 일은 내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손을 내밀어 그를 안은 순간, 주께서 내 마음속에 그를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부어주셨다는 것이다.” 코리 여사는 마지막에 이렇게 남겼습니다.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성령에 의지한 순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죄 용서를 받은 사실을 믿고 있지만, 신앙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입니다. 용서에서 제외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헨리 나우엔이 한 말이 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이 아니어서 감사합니다.”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다는 말이고, 누구나 용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셨고 아들 예수를 보내시고 예수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살리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미움이라는 감옥에서 살아갑니다. 용서는 나와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입니다. 용서받은 사람의 최고 증거는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늘의 진정한 평화와 자유를 누릴 것입니다.

여러분의 목사 류응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