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18일)
새해를 맞이하여 “하나의 기쁨으로 천개의 아픔을 이겨내고” 라는 글을 써서 새해 인사말을 대신하곤 했습니다. 한 분이 이 인사말에 답을 보내왔습니다. “목사님, 하나의 기쁨을 하나님의 기쁨이라고 읽으니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천 개의 아픔, 모든 아픔과 어려움을 이기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게 하는군요.” ‘하나’의 기쁨을 ‘하나님’의 기쁨으로 읽었다는 그 한 마디가 오랫동안 저의 가슴 속에 남았습니다. 물론, 하나의 기쁨이란 하늘이 내리는 물방울 만한 기쁨만 있어도 폭우 같은 아픔을 이겨낼 수 있다는 의미였지만, 하나님의 기쁨이라고 읽는 순간 차가운 겨울 하늘에 따스한 봄햇살이 내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흔히 기쁨이라고 하면 슬픔과 아픔이 없는 것을 떠올리지만 진정한 기쁨이란 아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만족과 즐거움을 누리는 것입니다. 온실 속에 피어난 꽃도 아름답지만, 광야에 억센 바람을 맞으며 피어나는 한 송이의 꽃은 경이롭습니다. 올해 어떤 상황이 펼쳐진다해도 주님 주시는 기쁨의 한 자락이라도 가슴에 새긴다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여유있는 미소를 지으며 나아가는 삶이 될 것입니다.
지난 주에는 한 목사님과 대화하면서 성경에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에서 ‘항상’이라는 말이 너무나 부담스럽게 다가온다는 고백을 들었습니다. 사람은 감정과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인데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른 낙엽처럼 부서지기 쉬운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주님이 잘 알고 계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항상’이라는 말을 신자의 의무나 책임으로 읽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한번 생각해 보라고 부탁했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도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나의 손을 여전히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본다면 상황을 뛰어넘는 남 모를 힘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다짐한다 해도 우리 앞에 찾아오는 아픔과 슬픔의 소낙비는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빗줄기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홍수 같은 상황에도 여전히 우리를 지키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겁니다.
올해 우리 교회는 “기쁨으로 사명을 이루는 교회”로 나아갑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 나에게 한번 다짐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찬란한 오늘이라는 선물을 받았으니, 어떤 상황이 펼쳐져도 모든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리라.’ 예배하기 위해 교회에 들어설 때면 속삭여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지상에서 경험하는 최고의 예배처럼 기쁨으로 예배하리라.’ 직장을 향해 집을 나설 때나 사람들을 만날 때도 결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속에 잔잔히 흐르는 기쁨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넘쳐 흘려가는 축복의 삶이 되게 하소서.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 올해 많은 어려움과 아픔이 찾아와도 다시금 주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주시는 하나의 기쁨으로 천 가지의 아픔을 이겨내는 삶으로 함께 나아가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목사 류응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