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내가 본 이원상 목사님

목사님의 휘파람 소리 – 한소희 집사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중앙장로교회가 비엔나에 있던 시절의 기억이다. 비엔나 성전에는 파킹랏 바로 옆에 교회 사무실로 곧바로 이어지는 바깥 계단이 있었다. 주중 어느 날, 그 계단 근처에 서 있는데 뒤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고(故) 이원상 목사님께서 사무실에서 나오시며 휘파람을 부는 소리였다.   정확히 어떤 곡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찬송가를 휘파람으로 부르시며 사무실에서 본당 쪽으로 걸어가고 계셨다. 나는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리며 얼떨결에, “어머, 목사님도 휘파람 부시네요?”라는 말을 하고 말았다. 목사님은 멋쩍은 미소와 함께 고개로 가볍게 인사를 건네신 뒤, 조용히 본당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목사님이 본당으로 들어가신 뒤, ‘왜 그런 쓸데없는 말을 했을까?’ 라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목사님이 휘파람을 부르신 일은 전혀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때의 나는 왜 그것을 그렇게 낯설게 느꼈을까.  목사님도 우리와 같은 한 사람이셨는데, 나는 그분을 멀고 높은 자리에 계신 분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목사님은 살아생전 말과 삶이 일치하고, 온전한 인격을 지닌 참으로 고귀한 분이셨다. 그래서 고등학생이던 나의 눈에 목사님은  거룩하고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존재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날의 한 장면 속에서 목사님은 찬송가를 휘파람으로 부르시던, 소박하고도 소년 같은 순수함을 지닌 분이셨다.  이제는 목사님의 휘파람 소리를 다시 들을 수는 없지만, 그날의 장면과 음성, 따뜻한 미소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가정에서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 조영애 집사

저는 2007년 10월부터 7년간 이원상 목사님의 장모님이신 강옥화 권사님을 돌봐드렸습니다. 이원상 목사님은 장모님과 함께 사셨기 때문에 저는 7년간 매일 목사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저희 가족에게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친정아버지 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존경받는 목사님들 중에는 뒤에서 무릎으로 기도하시는…

“세심한 영적 멘토링” – 김수원 집사

목회에 합당한 목회자와 종들은 많지만, 제 소견으로는 이원상 목사님의 영적인 본보기와 됨됨이에 견줄 만한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목사님의 겸손한 섬김과 목회의 비전과 신실함을 통해 목사님을 선망하며 존경했습니다. 저는 최근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제 인생에서…

“기도의 빚이 너무 큽니다” – 노세웅 집사

 35년 전 루인스빌 교회 시절에는 어려움이 참 많았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고 우리 부부는 수입이 그리 넉넉하지 않아 힘겨운 삶이었지요. 그런 가운데서도 성도들과 함께 이원상 목사님 내외께서 심방을 오셔서 위로해 주고 가면 다시 힘이 나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원인모를 알레르기로 고생할…

잊으려 해도 잊지 못할 사람 – 김원기 목사

나그네와 같은 짧은 인생을 살면서 그 가운데 잊어버리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잊으려 해도 잊지 못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60여 년의 제 삶의 여정에서 두고두고 잊지 못할 분 중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분이 이원상 목사님입니다. 처음 이 목사님을 만났을 때가 1982년이었습니다.…

한인 2세대 교회의 선구자 – 오웬 리 목사

이원상 목사님은 미국에 사는 한인 2세대들을 위해 진실한 마음과 비전을 가지고 한인 2세대 목회자들에게 의도적으로 많은 투자를 하신 보기 드문 한인 1세대 목사님이셨습니다. 저는 그 한인 2세대 중 한 사람입니다. 그분은 2세대인 우리를 믿어 주셨고, 우리에게 힘을 실어 주셨으며, 우리가…

“예수님의 성품을 강의하시고 본보이신 목자” – 최종상 선교사

2009년 둘로스 배의 단장으로서 세계 순회 사역을 끝내고 미국을 방문할 때 이원상 목사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SEED 선교회 기도모임 후 영국에 돌아가 영국과 유럽 재복음화를 위해 암노스교회 개척학교를 설립하고자 하는 계획을 말씀드렸더니 목사님은 큰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2013년 3월 암노스교회 개척학교…

“예수님 닮은 목사님과 두 동역자들” – 김병춘 장로

이원상 목사님은 저희에게 예수님 같은 분이셨습니다. 당회에서도 목사님은 오직 자신을 낮추시며 당회가 아니라 주님께서 최고의 결정권자가 되시도록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앞에 순종하는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겸손과 온유와 기도와 사랑으로 당회원들을 섬기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세상에서 바쁘게 지내다가 정신 없이 뛰어온 당회원들은…

“선교를 위해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신 목사님” – 권형인 전도사

여름 단기 선교를 다녀온 후 타슈켄트에 사는 조선족(고려족)에게 부름을 받고 1991년 교회파송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느 고려족 할머니 집에 들어가 살면서 화투치는 할머니들에게 요한복음 3장 16절을 가르치고 잔치 때마다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떡합니까”를 부르면서 모두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다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