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사님과 함께한 잊지 못할 에피소드들 – 김준희 권사
목사님과의 악수 아들의 권유로 처음 와싱톤중앙장로교회에 나왔을 때였습니다. 저는 예전에 사회사업과 육영사업을 했었기에 인사 때 악수하는 습관이 있어서 예배 마친 후, 목사님 내외분과 인사할 때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었습니다. 그것을 알고 나중에 고등학생인 아들이 “엄마, 우리 목사님은 여자들과 악수는…

목사님과의 악수 아들의 권유로 처음 와싱톤중앙장로교회에 나왔을 때였습니다. 저는 예전에 사회사업과 육영사업을 했었기에 인사 때 악수하는 습관이 있어서 예배 마친 후, 목사님 내외분과 인사할 때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었습니다. 그것을 알고 나중에 고등학생인 아들이 “엄마, 우리 목사님은 여자들과 악수는…

한어권 아가페 사역 중에 목사님께 큰 감동을 받았던 일이 있습니다. 여름 수련회를 준비 중이었는데 어느 날 목사님이 “수련회 강사는 찾았나요?” 하고 물으셨습니다. 아직 찾지 못했다고 말씀드렸더니 목사님은 “수련회는 청소년 사역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청소년 사역은 수련회에서 결정 나지요. 기록을 보면…

목사님을 모시고 함께 주님을 섬겼던 30여 년의 세월을 돌아보니 말로 다할 수 없는 목사님과의 일화가 생각납니다. 교회가 성장하여 목사님의 사역이 늘어나 심방시간이 부족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회에서 심방은 부목사님들께 맡기면 어떻겠느냐고 건의했더니 목사님은 “교회가 성장할수록 성도를 만나기가 힘들어지는데 첫 심방만은 꼭…

1989년 5월, 휴스턴에서 교육 목사로 섬기면서 남미 아르헨티나 선교사로 파송받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은퇴를 앞두고 있던 담임목사님의 후임 목사가 될 것을 제의 받았습니다. 한 달간 고심하며 기도한 후에 사임을 결심하고, 8월 말까지만 교회를 섬기기로 하였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갑자기 파송교회가…

이원상 목사님은 오늘날 후배 목회자들에게는 귀감이 되는 희생적인 헌신으로 성실한 목회의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이 목사님의 인품은 ‘온유와 겸손’으로, 이 목사님의 사역은 ‘기도’로 함축할 수 있습니다. 목자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잘 닮아가신 삶으로 여겨집니다. 저는 24년 전 리치먼드에서 사역을 시작하면서부터…

이원상 목사님은 워싱턴 이민 사회와 교계에 큰 구심점이 되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스승과도 같은 분이십니다. 사업을 하다가 부름을 받아 목회의 길로 들어섰기에 부족한 점이 많은 저에게 목회에 대해 귀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이 목사님은 선교에 대한 열정이 너무도 크셨습니다. 교회를…

하나님께서는 이원상 목사님을 통해서 저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40이 넘어 뒤늦게 처음으로 교회에 나간 저에게 친히 새신자 교육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시며 왜 믿어야 하는지를 알게 하셨고, 셋째 주 교육을 받을 때쯤에 저는 ‘이제 죽어도 천국을 갈 수 있다’는 매우…

아침 6시 45분이면 어김없이 전파를 타고 울려 퍼지는 이원상 목사님의 “오늘의 말씀.” 이것은 AM1310 기쁜소리 방송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워싱턴 지역 한인들에게는 한 모금의 생수요, 축복에 찬 하루를 열게 하는 원동력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특히 바로 곁에서 목사님과 함께할…

제가 이원상 목사님을 처음 뵌 것은 1995년 2월 제 아내와 결혼을 앞두고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였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방문을 열었지만 겸손과 온화함으로 가득한 목사님께서 저희의 결혼을 기뻐하며 기도해 주시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후 이 목사님은 부족한 저를…

1993년 1월부터 KCPC 교육부 교역자로 이원상 목사님과 함께 사역을 하며 가까이서 뵙게 되었습니다. 부교역자들에게 ‘큰 목사님’으로 불리신 이 목사님은 정말 마음이 매우 크고 너그러우신 분이셨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반해, 이 목사님은 오히려 자신에게는…